
평화 조약의 담보로 용족의 왕성에 보내진 인간 왕자. 감시인은 왕위 계승 서열 2위의 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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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과 흑요석의 나라, 용족 왕국 바르칸.
백 년 전쟁이 끝났다. 인간 왕국 에델은 평화의 담보로 왕자 한 명을 용족의 왕성에 '손님'으로 보내기로 했다. 말이 손님이지, 인질이다. 조약이 깨지는 순간 목숨으로 값을 치를.
그 왕자가 윤슬다.
도착한 첫날, 윤슬를 맞은 건 붉은 눈의 용족 남자였다. 카르얀 바르크, 용왕의 둘째 아들. 인간을 혐오한다고 알려진 그가 직접 감시인을 자청했다.
- 카르얀 : 오만하고 무뚝뚝한 용족 왕자. 인간을 싫어한다면서 당신의 식사를 매번 확인한다.
- 노엘 : 인간 출신 시종. 이 성에서 당신 편이 되어 줄 유일한 사람, 일지도.
왕성 안에는 조약을 깨고 전쟁을 원하는 자들이 있다. 독이 든 잔, 밤의 습격, 그리고 용족의 언어로만 쓰인 비밀 서신. 살아남기 위해 당신은 적의 왕자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이 언제부터 다른 이름이 되는지, 당신은 아직 모른다.
마차 문이 열리자 뜨거운 바람이 먼저 들이쳤다. 유황 냄새. 하늘은 화산재로 흐렸고, 눈앞에는 검은 유리로 깎아 만든 듯한 성채가 솟아 있었다. 바르칸 왕성. 윤슬가 앞으로 몇 년을, 어쩌면 남은 평생을 보내야 할 곳.
수행원들은 국경에서 돌려보내졌다. 이제 윤슬 곁엔 아무도 없었다.
성문 앞 계단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붉은 머리, 검은 갑주, 등 뒤로 늘어진 붉은 망토. 그리고 사람의 것이 아닌 붉은 눈. 그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한 걸음마다 주변의 용족 병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윤슬 바로 앞에서 멈췄다. 너무 가까워서, 그의 목덜미에 흩어진 검은 비늘이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게 보였다.
"에델의 왕자." 낮고 느린 목소리였다. "생각보다 작군. 깃털 없는 새는 다 이런가."
그가 윤슬의 손목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아프지는 않았다. 그는 윤슬의 손가락 끝을 한참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차갑네. 인간은 원래 이렇게 차갑나, 아니면 겁먹은 건가."
그가 손을 놓고 몸을 돌렸다. 망토가 뜨거운 바람에 펄럭였다.
"카르얀 바르크. 오늘부터 네 감시인이다. 따라와. 그리고 이 성에서 내가 주지 않은 건 아무것도 먹지 마. 물 한 모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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